2003년 10월 31일은 故김정운 대위의 기일입니다. 함께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어린시절 김정운 대위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우리 정운이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육상선수였어요. 달리기를 참 잘했거든요. 그런데 6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체력이 약하니 육상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오기만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정운이가 어찌나 속상해했는지 모릅니다. 또 정운이는 어려서부터 지는 것을 참 싫어했어요 뭐든지 열심히 했습니다. 학교 운동회에서 기마전을 할때도 꼭 대장을 하곤했습니다. 보이스카웃도 했는데. 거기서도 대장을 했구요.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아이였습니다.
보이스카웃을 중학교 내내 했는데. 3학년때 또 대장을 맡더라구요. 책임감도 있고, 리더십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강원도 보이스카웃 1박2일 야영대회가 춘천 중도에서 있었는데.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은 음식등 단단히 준비를 해왔는데, 춘천에서 사는 아이들이다보니, 음식을 준비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정운이가 기지를 발휘하여, 다른 지역 아이들에게 음식을 조금씩 얻어 배부르게 먹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로 인해 표창을 타기도 했어요 (웃음) 표창을 탄다기에 “무슨 일로 너가 표창을 다 타냐?”하고 물으니, “엄마 내가 대원들을 굶길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대장만이 할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궁리하다가 타지역 아이들에게 음식을 얻어 모두다 배부르게 먹었지요” 하더라구요.
고등학교때는 저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친구들이 정신차리지 못하고 놀기만 한다고 훈육을 하기도 했다니까요. 오지랖이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나 잘해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운 대위는 사춘기시절이 있었나요?
집에서는 착하고 바른 아이였기에 사춘기가 특별히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엄마인 제가 오히려 몸이 약해서 집안일을 제대로 못하면, 정운이가 집안 청소를 많이 했지요. 부지런한 성품이라 가만히 있지를 못했어요. 고마운 아들이었습니다.
*김정운 대위가 직업군인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어떠셨어요?
육군 3사관학교로 진료를 결정한 것은 합격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어요. 자격 요건이 꽤 까다로웠어요. 전문대 이상의 학력이 있어야 지원이 가능하고, 영어, 수학을 잘해야했거든요. 공부를 언제 했는지 합격을 했다니 기특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어찌나 좋았던지, 훈련이 경북 영천에서 1월부터 9개월동안 있었는데. 제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먹을 것 준비해서 면회를 갔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어렸을때부터 군인을 참 좋아했었는데. 정운이가 장교가 된다고 하니, 너무 기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봐도 참 행복했습니다.
*김정운 대위의 형제는 어떻게 되고, 관계는 어떠했는지요?
우리 정운이는 3남1녀의 세 번째였습니다. 형, 누나, 정운, 남동생이였지요
형제간의 의리가 대단했습니다. 정운이 누나가 어렸을 때 소아마비가 걸렸어요. 지금은 회복되어 거의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동네아이들이 저의 누나를 놀리기라도 하면 쫓아가서 꼼짝못하게 혼구녕을 내기도 했습니다. 똘똘 뭉쳐 동네에서는 천하무적이었습니다.
저희들끼리 서로 연락하며 고민을 나누기도 했고, 참 다정한 남매였던 것 같아요. 누나가 결혼할 때 즈음에는 매형 자격이 있는지, 자기들끼리 테스트도 하기도 하구요.
*김정운 대위가 특별히 좋아했던 것이 있을까요?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고, 잘하기도 했습니다. 어려서는 약골이었는데. 성장하면서 점점 더 건강해진 것같아요. 평소에도 드러누워 있지를 않았습니다. 부지런하고, 뭐든 열심히 하는 아이였어요. 건강관리도 참 잘했습니다. 큰 손주가 참 정운이를 많이 닯았어요. 그래서인지 큰 손주가 유독 정이 많이 갑니다.
*김정운 대위는 친구들이 많았는지요?
친구들 사이에서 선생님같은 친구라는 평이 제일 많았습니다. 4명이 아주 절친이었는데. 얼마나 의리가 있는지 몰라요. 정운이가 떠나고 혹시라도 내가 정운이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상할까봐 한동안 집에 오지도 못하더라구요. 우리 정운이가 아들이 하나 있었어요. 근데 심장이 안좋아 수술을 하게 되었지요. 그때 수혈을 해야한다고 하니, 친구중에 쌍둥이 아빠가 있었는데. 어리니 피가 깨끗할 거라며 애를 데리고 병원에 왔더라구요. 얼마나 그 마음이 고마웠던지.. 안타깝게도 손자는 세상을 떠났고, 그 이듬해에 정운이도 하늘나라에 갔지요. 어린 아들을 먼저보낸 정운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픕니다.
*가족여행은 많이 다니셨을까요?
저는 가족여행을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아이들이 넷이나 되니 여행 전 챙길것이 좀 많았어야지요. 그래도 설악산 오색약수터에서 밥 먹고, 고기 구워먹고 했던 추억이 얼마나 좋았는지 새삼 느낍니다. 아빠와 아이들과도 참 사이가 좋았습니다. 여행을 가면 지역 설명을 참 잘해주기도 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참 좋아했거든요.
*김정운 대위의 최애 엄마음식은 무엇이었을까요?
돼지고기 주물럭을 참 좋아했어요. 면회갈 때면 어마어마하게 고기를 재워갔어요. 빨간 생선도 구워서 갖고가고, 특히 만두를 좋아해서 쪄가지고 갔어요. 차 트렁크에 하나가득 갖고 가서 부대 동료들 다 불러 모아 펴 놓고 먹곤 했네요.
*김정운 대위로부터 들은 최고의 말은 무엇일까요?
‘엄마 사랑해요!’입니다. 엄마를 꼭 끌어안고 사랑해라고 하기도 했고,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운 대위 키우면서 재밌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정운이랑 정운이 동생이 6살, 4살때 예쁘장했습니다. 머리를 묶어서 여자애처럼 치마저고리를 입혀 사진을 찍었는데. 정말 여자애 같았어요.. 엄마인 저를 많이 닮기도 했지요.
*김정운 대위랑 엄마랑 많이 닮았나봅니다. 특히 어디가 제일 닮았나요?
고집이 센 거요. 한번 아니다 싶으면 끝까지 아니지요! 아이가 혹시 마음이 상할까 정운이보다 슬며시 제가 먼저 고집을 꺾기도 했습니다.
어렵고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가는 것도 비슷합니다. 하루는 새 바지를 입혀 학교에 보냈는데. 헌 바지를 입고 왔더라구요. 불쌍한 친구가 있어 바꿔입었다며.. 그런것까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오늘 김정운 대위 이야기를 오랜시간 하셨습니다. 마음이 좀 어떠세요.
그러게요. 오래 간만에 아들 이야기를 실컷하니까 참 좋으네요. 함부로 어디가서 얘기도 못하는데.. 정운이 얘기를 가족들하고 하면 애들 얼굴이 벌써 경직이 됩니다. 그러면 괜히 얘기를 했나보다 하고 금새 후회를 하지요. 엄마 마음이 힘들까봐 그러겠지요. 그냥 웃으며 받아주면 좋겠는데. 아이들도 마음이 힘드니 아직도 정운이 얘기를 하면 얼굴이 굳어지네요. 정운이의 명예 회복이 되어 가족 모두가 편안해지길 바랍니다.
*하늘에 있는 김정운 대위는 어머니에게 무슨 말씀을 해주실까요?
“엄마 많이 늙으셨네요. 젊으셨을때는 참 고운 얼굴이었는데.. 벌써 20년이 흘렀네요. 엄마 저 때문에 고생하셔서 얼굴에 주름이 많이 느셨네요”라고 하지 않을까요? 요즘도 꿈에 정운이를 자주 봅니다. 늘 말은 안하고 싱글싱글 웃기만 하지요.
*김정운 대위한테 한마디 해주세요.
매일같이 정운이에게 얘기합니다. 엄마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꼭 명예회복 시켜줄게. 그래서 마음 편히 가게 해줄께! 자존심 강한 우리 정운이 엄마가 우리 정운이 명예회복하는 날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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