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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최명기 하사 추억 나눔 인터뷰>

추억 나누기

by 군인권센터 2023. 10. 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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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나눔 인터뷰
故최명기 하사의 기일을 함께 기억합니다.
 
 
2013년 10월 6일은 故최명기 하사의 기일입니다. 함께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최명기 하사는 어떤 분이셨나요?
 
우리 명기는 무슨 일이든 성실하고 최선을 다했던 아이였습니다. 착하고 선했던 명기였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명기였습니다. 
 
*최명기 하사는 가정에서 어떤 아들이었나요?
 
명기는 사랑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부모와 형의 사랑은 물론이고, 친척 어른들에게도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남편이 8남매중 7번째인데. 위로 큰아빠, 큰엄마들께서 유난히 이뻐하셨어요.  집에서는 다정한 딸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알바해서 받은 첫 월급으로 엄마에게는 티셔츠, 아빠에게는 속옷, 형에게는 한턱을 제대로 쏘기도 하는 멋쟁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선물고르는 센스도 좋았구요. 선물을 받았을 때 어찌나 대견하고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최명기 하사와 아버님사이는 어땠나요?
 
아빠랑 명기 사이는 너무너무 친밀한 사이였고, 좋은 관계였습니다. 아빠가 명기를 엄청 이뻐했거든요. 그래서 어릴때부터 명기를 데리고 잘 다녔어요. 함께 외출하면 이웃들이 ‘어쩜 그렇게 잘생겼냐?’고 칭찬을 많이 하니, 아빠가 명기덕분에 우쭐하기도 했어요. 우리 명기가 잘 생겼거든요.(웃음) 그럼에도 행동이 잘못되었을때는 엄하게 꾸짖기도 했지요.
 
*아버님과의 또 다른 에피소드는 없는지요?
 
명기는 대학 들어가기 전 아빠의 작업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건설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도우러 갔고, 거기에서 성실하게 일하니까 칭찬도 많이 받았던 모양입니다. 철없는 애기인줄 알았는데. 성실하고 끈기있게 일하는 것을 보고 남편이 많이 대견해하고, 흐뭇해했습니다. 부사관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도 아빠가 추천이 있었고, 아빠를 잘 따랐던 명기도 아빠의 추천을 받아들였지요.
 
*어머님에게 최명기 하사는 어떤 아들이었나요?
 
장난꾸러기였고, 딸 같은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일하는 엄마라 늘 바빴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명기는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기도 했어요. 하루는 퇴근을 하는데 명기한테 전화가 왔어요. “엄마 빨리 와요, 불났어요!”하더라구요. 놀란 가슴에 급하게 집에 도착하니, 명기가 삼겹살을 구워 놓고는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따뜻한 음식을 해주고 싶었나봅니다. 감동도 했고, 놀래기도 했네요. 또 한번은 무릎에 빨간약을 발라놓고 피난다고 하기도 하고.. 참 장난꾸러기 였습니다. 
 
명기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아이여서인지 엄마의 마음을 참 잘 헤아리는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알반지를 사왔어요. 한복입을 때 꼭 끼겠다고 하니, 나중에 커서 금반지를 해준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 알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토끼털을 선물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명기한테 받은 선물이 참 많습니다. 
 
*두 살 터울 형과의 사이는 어떘는지요?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명기한테 형은 군기반장이었습니다. 명기가 아빠한테 용돈이 필요하니 달라고 하면, ‘어디에 쓸거냐, 왜 필요하냐, 고등학교 졸업후에는 스스로 알바해서 꼭 갚아라’라고 다그치기도 했어요.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형이지만, 형을 많이 어려워습니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을 돌보는 형을 어려워하면서도 잘 따랐구요. 옷을 물려받는 것을 아이들이 싫어하는데 명기는 형 옷을 물려받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만큼 형을 좋아했습니다.
 
*정말 형과의 사이가 돈독하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하루는 명기가 십원짜리 두 개를 갖고, 슈퍼에 가서 코코아 두잔을 뽑아오는 거예요. 이상해서 명기를 따라 가보니, 자판기 앞에서 십원을 넣고 반환기를 돌리니 백원짜리가 나오더라구요. 그것으로 코코아를 뽑아 먹었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명기야, 이 돈은 누구꺼야?”하고 물으니, 아주머니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슈퍼 아주머니에게 “우리 아이가 자판기에 십원넣고 백원을 뺐나봅니다. 어떻게 할까요? 파출소로 보낼까요? 아니면 용서해주실래요?”하니, 오히려 “명기 때문에 자판기 고장난 것을 알았네. 다음부터는 안그럴테니 용서해줄게”하더라구요. 그때 걱정이 되었어요  ‘혹시라도 명기가 잘못된 길로 가면 안되는데.. 어릴 때 바로 잡아야하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큰아이한테 “명기 잘챙기라”고 무거운 책임감을 줬던 것 같아요. 형은 듬직한 큰아들의 역할을 다했고, 명기는 무섭지만, 의지가 되었던 형을 많이 따랐던 것같습니다. 
 
*최명기 하사는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특별히 모나지 않게, 무난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명기가 활발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착했습니다. 특별히 반항을 하는 사춘기는 없었던 것같아요. 가정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화목했습니다. 
 
*군생활도 참 잘했던 모양입니다. 
 
군생활을 정말 잘 했어요. 장기복무를 하기 원해서 더욱 열심했는지 모르겠지만 ‘솔선수범’이 우리 명기를 설명하기에 딱! 좋은 말인 것같습니다. 동료들도 열심히 일하는 근무자였다고 우리 명기를 평가하더라구요. 총기도 있고, 일머리도 좋았던 것같아요.
 
동료들을 위해 대신 근무를 해주는 경우도 많았고, 퇴근 후 초과근무나 일요일 등 휴일근무도 많았고, 근무하다가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적이 참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군 입대후에는 월급받은 것을 몽땅 통장에 넣고 아예 돈을 거의 쓰지 않았더라구요. 정말 성실히 일만 했던 것같아요. 
 
*최명기 하사가 제일 좋아했던 엄마 음식은 무엇일까요? 또 특별히 좋아했던 음식은요?
 
우리 명기는 고기를 참 좋아했어요. 가족 모두가 고기를 좋아했어요. 명기는 특별히 아구찜이랑 닭볶음탕도 참 좋아했습니다. 
 
*이번 기일에는 어떻게 지내시게 되나요?
 
10월6일 기일에는 큰아들과 함께 가고, 아빠는 일 때문에 토요일에 다녀올 것같아요. 
 
*최명기 하사가 지금 곁에 계시다면 어머니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엄마! 봉사활동도 적당히 하시고, 집에서 휴식도 좀 하세요. 엄마 건강을 제일 먼저 살피세요~”라고 할 것 같아요
 
*최명기 하사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명기가 살면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고, 힘들기도 했는데.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해. 하늘에서는 원하는 거 다 하면서 행복하렴. 명기야~ 그곳에서 행복하게 잘 있지? 안 좋은 기억은 털어버리고 우리 명기는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어! 우리 또 만날 때까지 각자 행복하게 지내자!” 저는 명기하고 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명기가 너무 보고싶고, 안아주고 싶고, 만져보고 싶어요. “보고싶다 명기야”
 
*최명기 하사의 이야기를 오랜시간 하셨습니다. 마음이 좀 어떠세요?
 
너무 좋습니다. 위로가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군인권센터는 군 인권침해 피해자 유가족 마음 돌봄 사업의 일환으로 기일을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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