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김여상 일병의 기일을 함께 기억합니다. 추억 나눔 인터뷰>

추억 나누기

by 군인권센터 2023. 5. 5. 18:40

본문

오늘 4월 28일은 소속 부대의 관리 소홀로 인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김여상 일병의 기일입니다. 함께 기억하고 추모해주세요. 김여상 일병의 어머니와 나눈 추억 나눔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김여상 일병의 어린시절은 어땠는지요?
-“장난기 많고, 밝은 아이였습니다. 엄마 말 잘 듣는 장난꾸러기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장난꾸러기 여상이는 어렸을때부터 평화주의자였어요. 명절 친척들이 많이 모일 때면 욕심을 내거나, 주장을 하는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툼을 싫어했거든요. 친척형들이 컴퓨터를 오래 차지하고 있어도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여상이여서 가족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성실하고 인내심 많은 아이였습니다. 여상이는 성격이 참 좋아 친구들도 참 많고 인기도 많았습니다. 친구들을 주로 끌고 다니는 아이였어요. 집에도 자주 친구들을 데리고 왔어요. 제가 일을 해서 매번 잘 챙겨주지 못해 많이 미안했어요.”
*김여상 일병이 첼로 연주자 였지요? 첼로를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초등학교 2학년 말에 첼로를 시작했어요.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 첼로에 관심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첼로소리가 저음이기도 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도 해서 여상이에게 잘 맞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손가락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길고, 첼로를 하기에 좋은 체격조건이기도 했습니다. 첼로를 시작하고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천안 유소년 오케스트라에 입단해서 연주활동을 했습니다. 여상이가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연주하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여상이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이 많았던 것같아요. 공부뿐 아니라 실기, 경제적인 상황등 나름대로 신경이 많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연주자로서 인정받고 잘해내고 싶은 마음도 컸던 모양이예요. 결국 첼로연주자라는 길을 선택했고, 자기의 꿈을 이루려고 유학까지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엄마로서 할수 있는 일은 아들의 선택을 응원하고 바라봐주는 것이 전부인 것같아요”
*유학생활은 어땠어요?
-“여상이는 오스트리아로 어린나이에 유학을 갔어요. 원래 스스로 계획하고, 계획에 따라 착실히 실천하는 아이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상이는 유학시절 공부도 하고, 알바도 하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성실하게 알바를 하니, 한번 인연을 맺게 되면, 계속 연결이 되었던 것 같아요. 우리 여상이는 유학생활을 하면서 고맙게도 주변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평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많이 했었는데, 너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방학 때 한번씩 한국에 오면 아이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 느꼈습니다. 생각자체가 아름다워졌다고 해야할까요? 속도 깊어지고 순수하고 삶을 대하는 자세, 태도도 많이 진지해진 것을 느낄 수 있어 너무 대견했습니다.”
*김여상 일병은 엄마를 어떤 분으로 기억할까요?
-“늘 바쁜 엄마? 바른생활하는 엄마로 기억할 것같습니다. 항상 직장을 다녀서 여상이는 엄마는 늘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같아요. 그래도 대화는 많이 나누었던 것같아요. 주로 진로, 미래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누며 얘기를 했던 것같습니다.”
*김여상 일병이 제일 좋아했던 집밥은요?
-“볶음밥입니다. 바쁘니까 여러 가지 채소넣고 볶음밥을 제일 많이 해줬고, 그것을 잘 먹었습니다. ‘엄마 너무 맛있어요’하면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아들, 바쁜 엄마를 이해해주는 고마운 아들이었습니다.”
*김여상 일병은 누나들과의 관계는 어땠었나요?
-“누나가 2명이 있습니다. 12년, 7년 누나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요. 누나들이 여상이를 참 예뻐했어요. 어렸을 적부터 착하고 온순한 아이였거든요. 누나들하고 인형놀이도 같이하고, 소꿉놀이도 같이 하곤 했지요. 누나들은 여상이라고 하면 무조건이었습니다. 큰누나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니까 주로 작은누나랑 좀 더 가깝게 지냈습니다.”
*김여상일병의 사춘기시기에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여상이는 친구들을 엄청 좋아했습니다. 친구들도 많구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오케스트라단원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고 연습하면서 재밌게 지냈어요. 한번은 오후3시가 연습시간인데, 여상이하고 친구들 몇 명이 오지를 않는 거예요. 합동리허설인데.. 3시15분쯤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라구요. 다른 아이들은 연습에 참여했지만, 여상이는 연습참여를 못했습니다. 주변부모님들이 말렸지만, ‘기본적인 시간약속을 못지키면 안된다’라는 생각이 연습참여를 못하게 했거든요. 저의 따끔한 훈육이 효과가 있었나봅니다. 여상이는 두고두고 그날의 일이 일상생활하는데 하나의 지침이 되었다며 감사하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기억이 나네요.”
*김여상일병은 어떤 운동을 좋아했나요?
-“우리 여상이는 참 잘 다쳤어요. 깁스도 많이 했습니다. 야구, 탁구등 무엇이든 격렬한 운동을 참 좋아했어요 어려서부터는 합기도했어요 3단까지 땄습니다.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고, 참 잘했습니다. ”
*제주도가 집이시잖아요. 모자간의 기억에 남는 제주도 여행지가 있으실까요?
-“2017년 4월 여상이랑 사려니 숲에서 산책을 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비가 많이 왔는데...우비를 준비해서 물찻오름도 다녀왔습니다. 1년에 몇 번 개방을 하지 않는데. 마침 개방일에 다녀온 거지요. 산책을 하고, 오름을 오르면서 ‘유학시절 힘들지 않았니?’라고 물으니, 엄마인 제가 걱정을 할까봐서인지, 웃고 떠들고 즐거운 얘기만 하더라구요. ‘엄마가 고생하니까 항상 미소를 짓고 환하게 웃게 해드리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일하는 엄마에게 걱정하지 않게 해주고 싶어나봅니다. 6월은 한라산에도 같이 갔습니다. 저는 진달래밭까지, 여상이는 완주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기분좋고 행복했던 제주나들이였습니다. ”
*김여상 일병이 억새밭에서 찍은 멋진 첼로 연주 프로필사진이 있더라구요. 전문 모델같던데요?
-“귀국해서 얼마안돼 문화재단에서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아는 형이 프로필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연주도 하고, 렛슨도 하면서 군대가기 전까지 아주 바쁘게 살았습니다. ”
*김여상 일병의 군대 생활은 어땠는지요?
-“2017년 3월 완전히 귀국했습니다. 국적을 취득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으나, 여상이는 군대 갔다 온 후 한국에서 자리잡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군악대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티오가 나지 않아 마음이 급했던 것같아요. 그래서 첼로로 가지 못하고, 일반병으로 입대하여 군악대로 분류되었습니다. 좀 여유있게 생각해도 되었는데, 입대시기를 지연할 수가 없어 그냥 일반병으로 입대 하게 되었어요. 아마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했던 모양입니다. 입대해서 트럼펫을 했는데, 체격조건이 되고 전공자라고 하니 트럼펫에서 튜버로 악기를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군악대라고 해도 수준이 있는 곳은 아니다보니,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아 많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전공자이다 보니, 좀더 예민하고 힘들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첫 휴가때는 첼로를 갖고 들어가서 행사때마다 차출되기도 했고, 연주도 했습니다. 동료들과는 잘 지냈던 것같아요. 원래 친화력이 좋았던 아이여서인지 사진을 찍은 것을 보면 동료들과 재밌게 지냈던 것같아요”
*김여상 일병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내가 웃으면 우리 여상이도 웃지않을까하여 미소로 인사하게되더라구요.. 여상아 사랑해. 나중에 또 보자. 편하게 잘 있으렴”
[군인권센터는 군 인권침해 피해자 유가족 마음 돌봄 사업의 일환으로 기일을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