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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나눔 인터뷰> 이예람 중사의 기일을 함께 기억합니다

추억 나누기

by 군인권센터 2023. 5. 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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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월 21일은 2021년, 공군에서 상급자로부터 성추행과 2차 피해, 부실 수사로 인해 세상을 떠났던 故이예람 중사의 두 번째 기일입니다.

특검이 기소하였던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재판의 1심 선고 기일이 다음 달 6월 29일입니다. 아직 이예람 중사가 국군수도병원 영안실에 있고, 이 중사 아버지는 빈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중사 사망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이예람 중사 어머니와의 추억 나눔 인터뷰를 전합니다.

*이예람 중사의 태몽은 어떻게 되나요?

-“초록초록한 숲속에 크지 않은 옹달샘이 있었어요. 옹달샘에 유리구슬같이 깨끗하고 투명한, 속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뱀이 있더라구요. ‘뱀인데... 어쩜 저렇게 깨끗할까?’라고 생각했어요. 하면서, 같이 노는 꿈이었어요.. 참 신기하고 희한하기도 한 꿈이었지요.. 정말 숲속 옹달샘에서 뱀이 헤엄을 치는 것을 한참동안 신기하게 바라봤던 것같아요..그러고서 예람이가 태어났어요. 첫 아들과는 다르게 저와 같은 성별인 예람이는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예쁜 아이였어요 아들과 또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이예람 중사가 아파서 놀라신 적도 있었는지요?

두 돌도 안되었을 때 기관지가 약해서 한양대 병원에 ‘모세기관지염’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아기 손목에 혈관주사를 맞는 것을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아이는 아이라 그 열이 나고 아픈 중에도 침대 위에서 팡팡 뛰고 놀고 하더라구요.. 기관지가 안 좋아 감기가 유행일 때마다 놀랐던 적이 많이 있었어요..”

*이예람 중사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가르칠 맛이 났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면 습득력이 좋아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피아노도 미술도 참 잘했어요. 진도도 빠르고 잘한다는 칭찬을 참 많이 받았어요. 근데 또 겁은 많아 몸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예람이를 예쁜걸 좋아하게 이끌기도 한 것 같아요. 또 데리고 다닐 때면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이쁘다는 소리도 많이 듣곤했습니다. 엄마 닯아서?(웃음) 이모도 고모도 모두 이뻐했고, 가족들의 사랑을 흠뻑 받았답니다. 참 우리 예람이가 초등학교 때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머리하나 더 컸어요 그래서 엄청 클 줄 알았는데. 저만큼만 자랐네요”

*이예람 중사와 한 살 터울인 오빠와의 관계는 어떠했나요?

-“예람이와 오빠는 14개월 차이가 나요. 정말 키울 때 힘들긴 하더라구요.. 아장아장 어린동생 예람이를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동생을 잘 보살펴주는 오빠였어요. 오빠는 섬세한 예술가라고 한다면, 예람이는 무언가를 결정하고 목표를 돌진하는 아이였습니다. 성향은 다르지만, 서로를 챙겨주는 사이좋은 남매였습니다. 물론 가끔 오빠한테 덤비기도 했지만, 순한 오빠는 그냥 져줬지요.”

*이예람 중사의 사춘기는 어떠했나요?

-“글쎄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네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오빠랑 거리를 두는 정도?.. 서로 소닭 보듯 하더라구요.”

*이예람 중사의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는지요?

-“예람이는 요리하는 것을 재밌어 했어요. 초등학교때 요리가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근데 제가 반대했어요. 너무 힘들거든요 (*어머님의 직업이 영양사입니다) 전문적인 요리사를 하려면 어설프게 하면 안되고, 차근차근 허드렛일부터 배워나가야하는데.. 그 힘든 일을 예람이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람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쯤 슬쩍 비행기 엔지니어를 권해봤어요. 제가 어렸을 적 꿈이 군인이랑 스튜어디스였거든요. 찾아보니 항공과학고가 있더라구요. 방향성을 제시했는데. 한참 장래에 대해 고민을 하던 예람이가 저의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더라구요. 너무 좋았습니다. 항공과학고에 들어가려면 공부도 잘해야 했어요. 예람이는 항공과학고로 목표를 정한 후에 공부도 체력관리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무사히 입학하게 되었구요. 군인과 비행기 관련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니, 어쩌면 제 꿈이 예람이를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말한 이예람 중사는요?

-“항과고 친구들은 경쟁상대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성장시키는 사이였습니다. 씩씩하고 용감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학교밴드에서 3년 내내 보컬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날개제(학교축제) 때 가족들도 가서 예람이의 공연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기억에 남는 곡은 이문세의 ‘난 너를 사랑해’, 아델의 ‘Make you feel my love' 객석은 폭발적인 반응이었고, 어마어마했습니다.

중학교의 절친들은 자신들에게 없는 예람이만의 특별함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모난 부분이 없어 친구들을 잘 아우른다고 하더라구요. 중학교때 반장을 했는데, 체육대회때 응원 플랜카드를 만들어 응원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저랑 남편이랑 앞잡이라고 놀리기도 했어요(웃음) 지금도 갖고 있네요”

*이예람 중사와 함께한 여행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부산 감천 문화마을입니다. 날이 더웠지만 걷고 수다도 한바탕하고 너무너무 좋았고, 기억에 남습니다. 깡통시장도요.. 밀면도 먹고, 유명한 카페도 가고 지금도 생각하면 꿈 만 같습니다. 학교에서 용돈 개념으로 받은 것을 모았다고 맛있는 식사도 커피도 디저트도 사주는 우리 예람이가 얼마나 고맙고 기특하던지.. 모릅니다. 딸이 보호자가 되어 저를 챙기는 것이 얼마나 새롭던지요.

*이예람 중사에게 섭섭했던 적은 있으신가요?

-“예전에 수학 문제를 풀다가 막혀서 딸에게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딸이 설명을 하는데 제가 이해를 못하니까, ‘이것도 몰라?’하는 거예요..어찌나 서운하던지 ‘너 엄마 모른다고 무시하냐?’라고 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으니, 오래도록 미안하다며 엄청 달래줬어요”

*이예람 중사의 최애 엄마 반찬은요?

-“제가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나물 반찬을 잘해줬습니다. 그 맛에 익숙해서인지, 고구마순 볶음이랑 호박나물등을 좋아했어요 참 분홍 소세지도 그렇게 좋아했어요.”

*이예람 중사와 아빠와의 관계는 어땠나요?

-“주로 아빠랑은 가치관, 예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에 대해 토론하는 사이였어요. 제가 보기에는 심각한 분위기를 즐기는 부녀지간이었지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재테크, 인생론에 대해 더욱 진지한 대화를 좋아하는 부녀지간이었습니다”

*이예람 중사는 엄마와 같이 교회를 다녔는지요?

-“네, 저랑 열심히 교회에 출석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때쯤 ‘엄마 나 방언 은사를 받았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더욱 하늘 소망을 갖고 삽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하며, 안식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족여행은 자주 다니셨나요?

-“자주 다니지는 못했습니다. 시간 될 때마다 다녔어요 특히 예람이가 진주로 가고 나서부터 남쪽 지방 여행을 많이 다녔던 것 같아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도 가고.. 애국심 키우라구요. 아들은 같이 안가고, 주로 셋만 다녔습니다. 오빠랑도 같이 온 가족이 함께 다닐 걸 그랬습니다.”

*이예람 중사 자랑한번 해주세요?

-“우리 예람이는 이쁘고, 공부도 잘했고, 속도 썩이지 않았고, 엄마도 잘 챙겼습니다. 엄마의 보호자인 양 직장 출근으로 배웅도 못 해준 엄마에게 언제나 편지를 써놓고 진주로 내려갔어요.

‘엄마의 걱정을 걱정하는 딸내미가~~~’로 시작하는 편지를 써놓고 갔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 잘하고 있을지, 아프지는 않을지, 혼나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은 엄마를 위해 걱정말라고 안심시켜주는 딸이었습니다.

*이예람중사는 보컬가수이기도 했지만, 오빠는 뮤지션이고, 선생님이나 이주완 선생님도 목소리가 엄청 좋으시던데.. 노래방에 가족끼리 가면 주로 무슨 노래를 부르셨나요?

-“저는 디어클라우드의 <엄마의 편지>, 아빠는 조영남의 <제비>, 오빠는 재즈풍의 노래, 예람이는 랩 다양하지요? 한때 예람이는 랩 가사를 쓰겠다고 한 적도 있습니다.”

*이예람 중사에게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하늘에서 엄마, 아빠, 오빠 지켜보고 있지? 다른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가 우리 다시 만나자. 그날이 오면 엄마가 꼭 안고 토닥토닥 해줄게. 미안하고 사랑해”

 

<엄마의 편지>, 디어클라우드

시간은 아주 천천히 청춘 앞에 서성이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내 나이에 숨어버렸다

두근대던 내 몸 안에 가득했던 용기 하나 둘 사라져가네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

살아야 해서 제쳐두었던 이야기

세상에 나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첫째인 너를 가진 일

이제는 알 것 같은데 돌이킬 수 없는 일들

지나간 후회들 모두 내 나이에 숨어버렸다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상처만 줘서 아직도 많이 미안해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

살아야 해서 제쳐두었던 이야기

세상에 나 태어나서 제일 좋은 날은

둘째인 너를 만난 날

다 지나간다 빛 바래진다 되돌릴 수 없는 시절

두려워진다 두렵다 아직 끝이 아닌데

전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

살아야 해서 제쳐두었던 이야기

세상에 나 태어나서 제일 기쁜 날은 소중한 날은

엄마라 처음 불린 날

 

[군인권센터는 군 인권침해 피해자 유가족 마음 돌봄 사업의 일환으로 기일을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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