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은 2014년 육군 제28사단에서 선임병의 구타·가혹행위로 세상을 떠난 故윤승주 일병의 기일입니다. '윤 일병 사건'으로 많이 알려진 윤승주 일병, 꿈 많고 착했던 청년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윤 일병 어머니와 함께 나눴습니다.
군인권센터 운영위원이시기도 한 윤 일병 어머니께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센터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함께해주고 계십니다. 기일 하루 전인 어제 4월 6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육군의 윤 일병 사인 조작, 은폐에 대한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청하는 진정을 제기하기도 하셨습니다. 사건으로부터 9년, 여전히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싸우고 계신 윤 일병 유가족에게 연대의 마음을 더해주세요!
*윤승주 일병의 어린시절이 궁금합니다. 어땠는지요?
-“한마디로 바른생활 어린이였습니다. ‘안돼, 하지마!’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었어요. 타고난 성품이 온유한 아이였어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도 듬뿍받았구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윤승주 일병은 특별했나요?
-“특별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형제들이 결혼해서 딸만 2명씩을 낳았어요. 그러니, 손녀딸만 8명을 두신 거지요. 근데 승주가 태어난 거예요. 어찌나 좋아하셨는지 몰라요. 특별히, 손녀딸들과 차이나게 사랑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동네이웃들을 만나면 ‘우리 장남이 아들을 낳았어’라고 자랑하고 다니셨어요. 승주에게 사랑을 듬뿍 주셨어요”
*윤승주 일병의 학교생활도 궁금합니다. 특히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냈나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예의바르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양보하기’를 너무 강조했나봅니다. 집에서는 조용하고 얌전한 승주로 기억하는데, 학교에서는 달랐나보더라구요. 친구들은 승주를 명랑, 쾌활, 리더십이 있는 친구, 누구하고나 잘 어울리는 친구로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노래도 잘해서 고등학교때는 합창부로, 대학교에서는 열정적인 과대표였습니다. 승주별명이 ‘승주엄마’였다고 합니다. 엄마처럼 잘 챙겨주고, 잔소리도 했다고 해요.(웃음) 입대전에 썸타는 친구가 있었던 것같기도 합니다. 작년 승주기일에 승주 고등학교 친구 3명을 현충원에서 만났어요. 해마다 인사를 하러 왔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윤승주 일병의 사춘기시절이 궁금합니다. 반항하는 사춘기시절이 있었나요?
-“승주는 사춘기가 없었습니다. 큰 누나와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기도 했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주로 작은누나랑 같이 컸습니다. 작은누나가 이것저것 심부름을 많이 시키기도 했는데. 인상한번 찌푸리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내심 ‘승주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어림도 없다. 아마 심부름은 안할걸’했지만 그런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작은누나가 짜증을 내거나 저를 힘들게 하면 슬며시 다가와, ‘엄마 내가 있잖아!’하며, 다정하게 위로해준 정많은 아들이었습니다. 반항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어느날 갑자기 간호학과를 지망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가정형편이 어려우니 책임감이 강했던 승주는 취업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고, 취업을 고려해 간호학과에 지원하겠다고 한 것 같았어요. 공부도 곧잘 했지만, 전형료가 아까워서인지 여러학교에 지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주사도 무서워하고 겁도 많은 아이였는데, 부모로서 안타깝고 미안했습니다. 승주가 떠난 후에 성경책에서 대학교 1학년 여름수련회에서 썼던 메모를 발견했어요. 간호학과를 택한 이유에 대해 적혀있더라구요. ‘하나님을 믿는 나는 지금 죽어도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말기암환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나의 사명인 것같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적혀있었어요. 장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나봅니다. 그제서야 왜 갑자기 간호학과를 지망하겠다고 했는지 승주의 속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
*윤승주 일병이 좋아하는 음식은요? 무엇을 좋아했나요?
-“승주는 모든 음식을 참 맛있게 먹었어요. 특히 고기를 좋아했어요. 체격이 크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든지 해주면 먹음직스럽게 잘 먹었습니다.”
*윤승주 일병은 입대전 알바를 하기도 했나요?
-“우리 승주는 입대 전 그 짧은 기간동안 알바를 참 많이 했습니다. 알바 사장님들이 성실히 일하는 승주를 참 이뻐했습니다. 한번은 원래 5만원을 받기로 했는데. 8만원을 받아왔더라구요. 사장님의 눈에 성실히 일하는 어린 알바생이 대견했던 모양입니다. 또 1학년 겨울방학에는 갑자기 영어공부를 하더라구요 ‘웬일이냐?’ 했더니, 좋은 알바자리가 났는데. 메뉴를 익히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더라구요. 거기에서 일하면서 150만원을 받았고, 그중에 50만원이나 저에게 주었습니다. 어찌나 미안하고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아버님과 윤승주 일병은 어떤 부자지간이었는지요?
-“정말 다정한 부자지간이었습니다. 무슨 할말이 많은지, 소곤소곤, 속닥속닥, 한결같이 따뜻하고 친한 친구같은 사이였어요. 에피스드가 하나 있습니다. 친구집에서 자고 오겠다는 큰 딸의 전화를 받고 화가 난 아빠가 ‘늦더라도 택시타고와라’라고 했어요. 다음날 큰딸에게 엄청나게 화를 내는 아빠모습을 본 승주는 ‘아빠 그런행동은 좋지 않아요?’라며 점잖게 얘기를 하더래요. 그래서 아빠도 깜짝놀랐다고 하더라구요 그때 승주가 3살인가 4살이었거든요. 아빠가 승주에게 혼이 났지요. 그때가 생각이 나네요 ”
*어머니에게 윤승주 일병은 애틋한 아들인 것같아요. 추억나눔 해주세요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았던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늘 승주에게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든시기라 승주에게 부담감을 많이 주었던 것같아요. 한참 공부만하고 친구들하고 재밌게 놀아야할 시기에 걱정을 준 것같아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요즘 행복한 순간이 오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늘 마음에 다짐을 합니다. ‘욕심내지 말자, 건강만 하자’라구요. 때로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끈을 너무 팽팽하게 당기고 살다보니,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선영이, 주영이, 승주 세아이의 이름을 제가 다 지었습니다. 학창시절 저희학교에 인물도 좋고, 성품도 반듯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이름이 선영이었어요. 그래서 선영이라고 큰 딸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후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주영이는 ‘주님께 영광을’, 승주는 ‘이길승, 주님 주 주님이 승리하셨다’라는 뜻으로 지었습니다. 특히 승주가 태어날 때 주위에서 기도를 많이해주셨어요. 선영이와 주영이를 낳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가 회복 후 승주를 낳게 되었거든요. 아쉬운것은 승주가 태어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넉넉하고 풍족하게 해주지 못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승주는 알바를 마치면, 그 피곤한 몸을 이끌로 엄마를 돕겠다고 제가 일하는곳으로 와서 도와줬어요. 어느날 승주가 늦더라구요. ‘무슨 일이 있나?’하고 생각하는데. 누군가가 구석에서 휴~~하고 한숨쉬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그때 내가 그만두지 않으면 승주가 나를 도우러 계속 오겠구나하는 생각에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만두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며.. 말도 못하고.. 그게 너무 기억에 남아요”
-“우리가족은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고 바빴어도 여름휴가는 꼭 갔어요. 또 가족들이 음악을 좋아해 노래방을 가서 함께 노래부르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누나가 노래방에서 승주가 노래부르는 영상을 찍었던 모양이예요. 예전 EBS에서 승주관련 방송을 했는데, 그때 승주가 노래부르는 영상을 처음 봤는데.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잘 부르더라구요.”
*윤승주 일병의 취미, 특기, 자랑거리좀 얘기해주세요
-“우리 승주 5~6살 때 수영을 했어요. 폼은 모범생이나 속도는 느려서인지 접영시작할 때쯤 흥미를 잃어 그만두었고, 초등학교 1~2학년때는 쇼트트랙을 했습니다. 역시 폼은 모범생이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학교에서 전교생 대상으로 스케이트 강습을 했었습니다. 마침 승주코치가 담당교사로 왔었던 모양입니다. 코치가 ‘승주야, 너 내일 스케이트복 입고와서 수업시작 전에 전교생이 있는 곳에서 시범을 보여라’했습니다. 선수급 폼을 지닌 승주는 전교생앞에서 시범을 보였고, 이후 학교에서 최고의 인기스타가 되었지요 어찌나 좋아하든지 그때가 생각납니다. 승주는 깔끔쟁이였어요 옷도 잘입고, 패션감각도 좋았습니다. ”
-“승주가 떠나는 자리에 승주의 많은 친구들, 알바 사장님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많이 왔었어요. 짧은 인생이었지만 승주는 열심히, 성실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임희숙의 ‘내하나의 사람은 가고’라는 노랫말을 들으면 제 마음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승주야! 너는 참 귀한 아들이었고, 나에게는 소중한 인연이었다. 고마운 우리아들 너무 힘들게만 해서 미안해. 보고싶다. 사랑해!”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엔 살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가거라 사람아
세월을 따라 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 길로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외로움 견디며 살까
이젠 그 누가 있어 이 가슴 지키며 살까
아 저 하늘의 구름이나 될까
너 있는 그 먼 땅을 찾아 나설까
사람아 사람아 내 하나의 사람아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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