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7일은 부대 간부의 폭언 등으로 정신적 고통과 직무상 스트레스를 받아 세상을 떠난 고동영 일병의 기일입니다. 고 일병과 함께 근무했던 예비역 부사관 중 한 사람의 양심선언으로 사망 이후 부대에서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밝혀졌고, 지난 해부터 다시 재판이 시작되어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어려서부터 기관사가 꿈이었던 착한 아들, 고동영 일병을 어머니와 함께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함께 기억하고, 또 추모해주세요.
*고동영 일병이 태어난 날 기억하세요? 태몽도 꾸셨는지 궁금합니다.
-“태몽인지는 모르겠으나, 맞을 거예요.. 강가에서 큰 물고기 세 마리를 손으로 양동이에 담는 꿈을 꾸었어요. 23살에 동영이를 낳았어요. 15시간이나 산고를 겪어서인지 엄마가 되었다는 감격으로 벅찼다기 보다 얼떨떨 했습니다. 어린 엄마였지만, 아이를 위해 초유도 먹이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고동영 일병의 꼬꼬마시절은 어땠는지요?
-“우리 동영이는 참 순했어요.. 동영이가 태어난지 한달만에 친정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친정어머니도 저도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는데 동영이를 함께 돌보면서 기운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할머니를 위해서인지 동영이는 뭐든 잘 먹고 잘 자고, 순둥순둥했습니다. 동영이가 우리의 힘이 되고 위로도 되었습니다.”
*영주는 고동영 일병의 고향인가요?
-“동영이는 영주에서 태어났고, 몇 차례 이사를 했지만 초등학교 2학년부터는 계속 영주에 살았으니 고향이나 다름 없네요”
*고동영 일병과 동생 현동님, 어린 시절 두 형제는 어땠나요?
-“3년 터울이 있는데 동영이와 현동이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동영이는 자기가 형아라고 생각해서인지, 외출을 해서도 ‘업어달라 안아달라’는 소리 한번을 하지 않았고 동생한테 양보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힘들면 ‘엄마 잠깐만’ 하면서 주저 앉아 쉬다가 쉬고나면 ‘엄마 됐다 가자’하는 아이였습니다. 동영이와 현동이는 어릴 때 성향은 많이 달랐기는 해도 친구들보다 둘이서 더 친했고, 늘 붙어다녔던 친구 같은 형제 사이였어요.”
*고동영 일병에게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아빠는 늘 바쁘고, 엄마는 늘 무섭다’로 기억하지 않을까싶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남편은 예의없고, 버릇없는 아이를 참 싫어했어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 항상 예의를 강조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인사하기! 인사만 잘해도 50점은 먹고 들어간다. 반듯하게 행동하고 인사 잘 하라’가 우리 부부의 훈육지침?이었던 것 같아요”
*고동영 일병과 현동님, 두 남자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슴이 철렁했던 사건이 있을 법도 한데..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왜 없었겠어요. 정말 가슴 철렁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동영이가 7살, 현동이가 4살 때 둘이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어 반나절 동안 여기저기 찾으러 돌아다녔습니다. 몇 번 동영이랑 현동이를 데리고 회사 동료직원 집에 갔었는데, 꼬맹이 동영이가 길을 익혔었나봐요. 동생이랑 손잡고 거기를 갔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도 오싹합니다. 상상도 못했어요.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동영 일병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착실하고 성실했습니다. 자유롭게 가만히 두면 사브작사브작 잘하는 아이인데, 평가나 판단을 받게 되면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였어요. 한번은 성적이 좋지 않게 나와 ‘정말 공부하고 싶니? 그럴 마음이 있다면 엄마가 과외선생님을 붙여주겠다’라고 하니,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이후 성적도 많이 올랐습니다. 과외 선생님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우리 동영이는 마음이 편하고 안정이 되어야 표현도 하고, 공부도 하고 성적도 오르더라구요.”
*고동영 일병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우리 동영이는 기차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아주 어릴때부터 기차가 지나가면 잡았던 손을 뿌리치고, ‘기차다’하며 쫓아가곤 했습니다. 아주아주 특별하게 기차를 좋아했습니다. 중, 고등학교때 용돈을 주면 기차사진을 찍고 현상하는 데 다 썼어요. 동영이 책상에 기차 사진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너무 잘찍어 확대한 것도 있어요”
*현동님은 고동영 일병을 어떤 형으로 기억하고 있을까요?
-“현동이가 군대를 가서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엄마 형하고 똑같은 사람을 봤어요’ 하더라구요. 현동이는 동영이가 때때로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고지식하고, 내성적이고, 늘 혼자 삭이는 형, 좋든 싫든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형, 언제나 괜찮다라고 했던 형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런 형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것같습니다.”
*고동영 일병에게 엄마는 어떤 분이셨을까요?
-“엄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엄마가 아니었을까요? 학교가 좀 멀어서 늘 차를 태워주곤 했습니다. 학교 가는 길 차안에서 대화를 많이 했던 것같아요. 대화가 좀 되는 엄마 아니었을까요?”
*고동영 일병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요, 엄마의 최애음식은 어떤 것일까요?
-“만두를 엄청 좋아했어요. 제가 동영이 임신했을 때 만두를 엄청 먹어서였는지 모릅니다. 잡채, 골뱅이국(올갱이국), 육개장, 조기, 새우전 등등 다 잘먹었습니다. 동영이는 ‘엄마 음식 먹다 다른 것은 못먹겠다’라는 칭찬을 곧잘 해주었습니다. 참 사과도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싱긋 웃으며, ‘엄마 이번 사과 정말 맛있어요. 즙이 정말 잘 나와요’하면서 아삭!하는 소리를 내며 먹던 동영이가 생각납니다.”
*고동영 일병은 어떤 아들이었나요?
-한마디로 감동을 주는 아들이었습니다. 말하는 것이 참 이뻤어요. 속상할 일이 있을 때 동영이랑 얘기하면 다 풀렸습니다. 동영이는 친구 같은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재잘재잘 말을 잘하고, 시장도 함께 다녔던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무거운 물건도 척척 들어주고, 엄마와 팔짱을 끼기, 손잡기, 어깨동무하기를 곧잘 해주던 남친같은 아들과의 시장보기는 늘 신났습니다. 또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음식을 할때면 재료 손질을 다해놓고 기다리는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고 3때였을거예요. 하루는 닭볶음탕을 해놓았더라구요. 아이에게 음식을 대접받는 느낌,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너무 행복했습니다. 저랑은 참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둘다 예민해서 과민성 대장증세가 있는 것도 같고 ㅎㅎ”
*고동영 일병의 장래희망은 무엇이었나요?
-“당연히 기관사였습니다. 그래서 대학교도 철도 기관사과를 다녔습니다. 그 꿈은 한번도 변한적이 없습니다. 한결같이요. 동영이의 친구들은 동영이를 기차 전문가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경북라인 철도관련 블로그도 운영했더라구요. 전국에서 꽤 유명한 블로그였다고 합니다.”
*고동영 일병과 아빠와의 관계는 어땠나요?
-“다정다감한 아빠는 아니였습니다. 바쁘기도 했지만, 아이를 붙잡고 대화를 하는 아빠는 아니였고, 필요한 얘기만 하는 그런 사이였습니다. 하루는 ‘아이들 데리고 목욕도 가고 그래야하지 않나?’라고 하니, 별 반응이 없더라구요.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지만, 무뚝뚝하고 성실한 아빠를 존경했습니다. 동영이가 아빠와 비슷한 성향이었어요. 동영이도, 남편도 말 없고 감정표현이 서툴렀습니다.”
*가족여행은 자주 다니셨는지요?
-“동영이가 어렸을 적에는 경제적으로 좀 어려웠어요. 아이들이 크면서 경제형편이 나아졌지만, 저희 부부는 토요일까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하루 밖에 없는 일요일은 지쳐 자야하니 여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바쁜 것을 이해해주는 아이들이었습니다. 한번 당일치기로 캠핑을 간적은 있었네요. 여행을 제대로 한적이 없는 것도 지금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고동영일병의 자랑한번 실컷해주세요
-“우선 얼굴이 잘 생겼습니다. 지금도 휴대폰에 ‘얼짱아들’이라고 저장해놓고 있습니다. 속도 깊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아이입니다. 특히 엄마를 잘 이해해주었던 아이였기에 결혼하면 아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다독여주는 일등 신랑감이 되지 않았을까합니다. 또 친절하고 기차를 사랑하는 일등기관사가 되었을 것 같고, 여행을 가면 어찌나 설명을 잘해주던지 최고의 가이드였기도 했어요. 우리 동영이는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친절한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동영일병에게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요? 음~ 동영아!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참지 말고 마음껏 하고, 괜찮다는 말은 하지 말자!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하자 무조건 괜찮다고 얘기하면 아무도 모르잖아 그러니 괜찮다는 말은 하지 말자!
다음 생애에 또 부모자식으로 만나면 더 많이 보듬어주고 사랑해줄게. 아니다. 바꿔서 태어나서 동영이의 사랑을 받고 싶기도 하다. 정말로 다시 태어난다면 엄마 자식으로 말고, 더 좋은 부모 만나면 좋겠다. 그래서 너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살면 좋겠다. 나 같은 부모 만나지 말아라라고 생각했는데.. (울음)
[군인권센터는 군 인권침해 피해자 유가족 마음 돌봄 사업의 일환으로 기일을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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