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은 군에서 세상을 떠난 故한진식 병장의 기일입니다.
입대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열심히 부모님을 도왔던 한진식 병장은 입대 후 과도한 업무와 부조리로 인해 건강상의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2008년 4월 6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함께 기억하고 추모해주세요.
*한진식병장은 부모님에게 어떤 아들이었는지요?
-“진식이는 참 착한 아이였습니다. 진식이랑 여동생 남매를 두었는데, 저는 책에서 배운대로 아이들을 키웠던 것같아요. 정직, 성실, 근면을 강조했고, 아이들이 모범적으로 자라길 바랬거든요. 남편과 중매반, 연애반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참 경제적으로 어렵게 시작했습니다. 시골에서 시어머님과 건강이 좋지않으셨던 남편의 사촌형님, 진식이, 진식이 동생 명진이 이렇게 살았거든요.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진식이한테 참 미안합니다. 저도 남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진식이는 속이 깊었던 든든한 아들이었던 것같아요 ”
-“시골에서 5년5개월을 살다가 전주로 이사왔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때 서울로 이사를 왔지요. 가정환경이 불우해서 우리 진식이는 많이 힘들었을거예요. 밝게 웃고 까불고 장난꾸러기였던 적은 없었던 것같아요. 부모에게 불평, 불만을 표현하는 아이도 아닌 순하고 착하게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사는게 바빠 애들을 챙겨주지 못했어도, 애들 때문에 속을 썩거나, 애태운적은 없었던 것같아요. 진식이는 수학을 참 재미있어하고 엄청 잘했습니다.”
특별히 사춘기가 없었던 것같아요. 그냥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많았던 것같아요.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졸업하자마자 입대전까지 피자헛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1년 6개월동안이나 꾸준히 해서 천5백만원정도를 벌었고, 그중에 50%를 엄마인 제게 주었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었습니다.
-“정말 친한 남매사이였습니다. 다정한 오빠였고, 잘 챙겨주는 오빠였지요. 어렸을 때 소꿉장난도 같이하고 서로 의지가 많이 되었던 남매지간이었습니다. 진식이가 알바로 번 돈으로 명진이 휴대폰을 사주기도 하는 자상한 오빠이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에게 의지가 되는 아들이었던 것같아요.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떠했나요?
-“아빠랑 당구도 치기도 하고, 서로에게 관심은 많지만 데면데면 한 사이였어요. 아버지나 아들이나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던 것같아요. 살가운 마음표현을 하기보다 묵묵히 바라보고 지켜봐주는 아빠였고, 아들이었던 것같습니다.”
*한진식 병장이 제일 좋아했던 엄마의 최애음식은 어떻게 되는지요?
-“김치입니다. 배추김치, 깍두기! 특별한 음식을 해주지도 못했네요. 엄마의 김치가 맛있다며 참 잘먹었습니다. 집안일도 참 잘 거두는 아이이게도 했습니다.”
*한진식 병장이 취미는요?
-“컴퓨터를 제일 잘했고, 좋아했습니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컴퓨터를 하면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것같아요”
*엄마만 알고 계신 한진식 병장의 비밀이야기는 혹시 있으실까요?
-“9박10일동안 휴가를 나온 진식이랑 많은 이야기를 같이 나누었습니다. 진식이가 ‘엄마 미안해요’하면서 꼭 안아주길래, ‘뭐가 미안해. 그런 말 말아라. 우리가 고맙다.’라고 했습니다. 진식이가 떠나고 메모를 하나 발견했어요. ‘돈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인간관계가 제일 중요한 것같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싶다.’라는 메모였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아팠던지.. 어린시절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나 돈을 버는 것으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게 만든 것같아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못지켜줘서 미안해. 뒷바라지 못해줘서 미안해. 너무 수고만 시켰다. 고맙고 미안하다. 진식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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